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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 12
세월이 말 하더라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리.
이윽고
으악새 노래되고
종내는
애절한 연가(戀歌)도 된다.
반복되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억새게 버틴다고
억새라 부르는구려.
사랑니 발치하는
순간부터
사라지지 않는 억새밭
어느 구석에라도
자리하고
그대 오시는 날엔 말해드리리.
아낌없이
하얀 꽃술 털어
그대의 연정(戀情)속에 뿌려
싹 튀어 주리라.
억새밭 11
작대기를 기대어 두면
사람의 형상인데
기댈 작대기가 없네.
그대는 기댈 게 없어
곁을 스쳐가는
바람이 미안하다네.
가을바람이 안긴
앞산에 단풍이 드네.
몸이 인(人)에 멍들고
연(戀 )에 멍이 들어
들고 드는 단풍
억새는 마름이 되어도
벌건
단풍 들겠네.
억새밭 10
洛東江가에
일어선
억새들은 슬프다.
질긴 힘줄
끊고자 하는 심수(心術)로
땅은 합쳐지고
이내
동강 나는 허리
그러하나
꼭 돌아가리라 되돌아가서
임의 앞에
다시서리라.
기다려주오
질긴 애정(哀情)으로
기다려주오
그렇게
임의 앞에서 우뚝 서
존재(存在)의 모습
보여드릴께요! 꼭요
지금
洛東江가엔
바람에 잠시 들어 눕는
억새들이 산다.
억새밭 9
키 멀쑥한 억새밭에 누워
당신을 생각합니다.
하얀 억새꽃들이 가슴속으로
쏟아져 내립니다.
제 눈에는 눈물 같은 꽃
몸부림치는 바람 속에서
잠들 수 없습니다.
억새밭 속으로 뚫린
오솔길로 걸어드는
발자국 소리 조용히 귀기우리고
있습니다.
혹여 당신의 발자국 소리 아닌지
바라고 바라지만
어느 연인들의 속삭임 이였을 뿐
의미 없는 소리였습니다.
더 멀어져간 거리에서의
당신
억새밭 속에서도 자꾸 떠오릅니다.
저를 누인 억새밭과
저 높이 흘러가는 새털구름과의
대화의 끝쯤에 저
눈물이 얼굴을 적십니다.
활활 타버렸슴 좋을 것 같은
말들이 이 넓은 화왕 분지를
가득 메워
집으로 가야지 가야지 하는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 합니다.
억새밭에는
거리가 먼 모습이 숨쉬는
부둣가 야경이 눈을 뜨면서
나를 묻습니다.
억새밭 8
억새들은
바람에
꺾이는 것이 아니라
미쁘지 못한 마음으로
부러지는 것이다.
낙동강변에는
어느 날 뿌리 채 뽑히고
물소리 듣는
억새들 있다.
강가에서
은밀한
우수(憂愁)와 서정(抒情)이
사라지기전에
우리 서로 사랑할까요?
낙엽 밟는 소리
귀를 기우리며
여기 제게 오십시요!
이곳에는
꺾어도 뽑아도
사라이지 않는
억새 같은
맘들이 살고 있습니다.
억새밭 7
억새밭으로 소원(所願)이
숨었다면
주체 못 할 그리움은
억새꽃이 되었다.
심장을 벤
붉은 선혈이 깊숙이
흘러
두발이 문드러지고
땅속 깊이 파고들어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갈무리되어 가는
네가 가는 길목
쓸쓸한 바람과 함께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저 능선 위
저 마음
좀 봐 좀 봐.
억새밭 6
억새밭에는
하고픈 말들이
팔랑대고
있었다.
물기 젖어
목구멍 기어드는
말
종내
전하지 못 한
소야곡들이
모여
서로를 붙들고
부벼대었다.
억새밭에는
잎살까지 세우고
갈색꽃 피워
누구든지, 가슴에다
던져주고 있었다.
갈색으로 부터
하얗게
하얗게
억새밭 5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義兵들의 당당한
창칼 같은
억새들
火旺山엔
시퍼런 義憤이
산보다
높은 억새밭
背信과 不義를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억새들이 산다
지금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억새밭 4
억새밭에는
작은 몸 하나 누워도
밀어내질 않는다.
억새밭에는
누우면 누울수록 일어서는
하늘이 있다.
억새밭에는
취하면 취할수록
몸이 산을 파고들고
억새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이 여정(旅程)
보이지 않을
억새밭에 들어가면
몸이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 먹고
능선이
산을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