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물안개
낙동강 아리랑 / 윤종덕(시인, 평론가)
낙동강, 序曲
合江亭은 알고 있다 흐름의 역사를
어울린 강 합하여 동으로 흐른다고
洛江이 東을 얻어서 어머니 된 낙동강
비닐하우스 고추오이 자식 같은 이야기
동밭골은 밤이 깊어 별빛 좋아 시집간 날
강 건너 마을에 핀 유채 씨알 같은 강 아이
침묵 속 많은 말은 잦아드는 물의 깊이
강물속 살아 있어 말 않고 그냥 흘러
이 강은 우리말들을 오늘에도 전하리
1. 낙동강, 새벽
고고의 나팔소리 출렁이는 풀빛 하늘
솜털 같은 바람 아리 아리 부는구나
물소리 쟁쟁 울리며 여울지는 하늘 길
하늘하늘 푸른 꿈 춤을 추는 강의 하루
살가운 여명으로 상기되어 타는 강물
풀벌레 맑은 음성으로 노랫가락 퍼질라
황토빛 몸짓으로 담금질된 불덩이
달래 냉이 광대나물 깊은 江心 아리아리
산바람 되살아서 풀무질 황금물결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자식 가야 숨결
은빛 모래 금빛 물결 억만년의 세월로
풀꽃들 손을 흔드는 환호 속의 백사장
피돌기 실핏줄로 우리 땅 여는 소리
별빛달빛 알몸으로 씻어내는 개구쟁이
피붙이 보다 더 짙게 흘러가는 강 마을
2. 낙동강, 아침
씀바귀 속살처럼 태양같이 품은 뜻
비만 오면 황톳물 핏빛으로 흐르고
아무리 간절하여도 닫지 않을 뱃머리
짓무른 눈시울 초승달 달거리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 비바람에 회화나무
내딛은 강물의 역사 우리 앞을 비추고
산바람 들내 묻은 강변을 따라서
풀빛 가슴 자유 날개 휘젓고 휘저어서
저어라 풀무질 노도 삶의 터전 넘칠라
바람결에 이야기 아리 아린 두 뺨과
골수에 스민 시간 멍든 순간 맞이하려
까치들 선 울음으로 젖어드는 물결 꿈
물안개 물안개는 안고 도는 더운 가슴
젖어도 젖지 못해 사공의 눈빛처럼
꽃잎 속 상흔의 숨은 뜻 피어나는 저 언덕
3. 낙동강, 한낮
모래바람 돌부리에 감당할 수 없는 강물
넘어지고 깨어지고 피범벅이 된 말발굽
아기 새 뛰놀던 꿈을 새겨 넣은 발자국
굽이굽이 물결 따라 세찬 빗물 줄기 뻗어
칼바람 부는 날에 갈잎들이 서걱대고
눈가에 떨어진 꽃잎 내리쬐는 환희들
이글대던 태양도 눈을 감는 환한 대낮
숨죽이던 꽃잎도 영화롭게 피었는데
산하의 통곡소리에 쓰러지는 풀잎들
긴 사연 봄 편지는 오늘도 읽혀지고
수의처럼 펄럭이던 왕관의 배를 띄워
진혼의 낙동아리랑 허기져서 누웠네
몸살난 강둑에서 민들레 피고 지고
온 천지 유채 꽃이 돋아난 오늘 하루
悲曲의 나팔소리가 강물 따라 흐르네
4. 낙동강, 오후
아는가 갯버들아 마른 꽃잎 물오름을
擊攘歌 가락마다 여울지는 깊은 물 속
물방울 흐드러지게 사이사이 핀 눈물
안라인 아시랑국 비사벌 금동관아
기마 민족 철기문화 금판장식 환두대도
철지도 고리자루칼 세월 속에 녹슬고
강철같은 근육질 돋은 아이 말 등 타고
붉게 타는 강물의 심장소리 생생한데
이 땅의 대지를 녹여 생기 얻은 저 햇살
금제과대 휘두르고 萬魚神魚 뛰놀던 곳
대륙을 누비던 소리소리 말발굽도
오백년 이 도읍지를 일구었던 대장간
마침내 흩어지는 꽃잎들의 아우성이
슬프도록 슬픈 꽃잎 피어난 모래밭
가슴에 파일을 박은 철심 같은 이내 강
흐린 날의 오후는 가난해서 우울하고
산골짝 물 모여서도 잘 흐르지 못하니
수채화 새 천년의 봄을 채색하고 있느냐
5. 낙동강, 석양
다호리 나팔꽃은 말들의 성찬인데
슬픔은 죽어야만 벅찬 환희 보여주나
철새들 갈 길 잃어도 순환 물결 띄우고
남루한 옷을 벗는 움돋는 강변에서
핏빛으로 얼룩지는 젊은 날의 대동맥
긴 겨울 줄기 속에 담긴 우리 희망 유채꽃
핀다 핀다 꿈이 핀다 온 세상이 문을 열고
핀다 핀다 꽃이 핀다 온 천지에 꽃이 핀다
발걸음 곤해 바빠져 티눈 박힌 처녀야
오이처녀 바람결에 길게 누운 저 강물
고추밭 붉은 열매 매만지는 손마디에
궂은살 망울진 속내 풀어주던 배앓이
잉태했던 자궁에 어머니 기억남아
기다렸던 그 순간 수줍은 배란 기쁨
상기된 여명의 얼굴로 핏빛눈물 흘리네
6. 낙동강, 해거름
딸애 같은 오이들이 물밑에 들어가고
자식 같은 고추들이 속물에 잠기어도
부풀은 강물의 눈물 흘리지는 않았네
비에 젖은 어미눈물 울지 않을 모래밭
아리아리 아리랑 그렇게 살아가니
정작에 물 속에 아이 꽃잎 되어 흐르네
아리아리 아이랑 아리랑 고개 넘어
달빛 아래 환한 유채 꽃들이 젖고 젖어
퇴색된 세월 속에서 노란 눈물 흘릴까
쟁쟁~ 울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사월의 태양아래 퍼질고 눌러앉은
강아강아 낙동강아 어데갔노 아이들
모래밭에 벌렁 누워 별빛을 바라보자
아리아리 어데어데 아라리오 아리랑
강냉이 한 입에 물고 하모니카 부르랴
어둠이 짙게 깔린 급한 물결 위에서
초승달 같은 아이 아련히 떠오르고
수평선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물보라
온다간다 말없이 돌아선 꽃잎들이
시린 뼈 속 절고 절은 여인의 설움을
보리밭 뻐꾹새 울음으로 휘날리는 꽃잎들
온 누리에 지친 꽃잎 빈 젖을 물릴 때
휩쓸었던 강물도 시치미를 떼고서
저녁놀 헤살거리며 웃고 가는 함성들
7. 낙동강, 初更
피라미 달빛 아래 투명한 물빛 곱고
흐름 세월 발길 역류 돌리지는 못하니
강물은 흐르는 노래 애가 끓는 물소리
동으로 동으로 해가 떠는 동쪽으로
푸른 강물 하얀 달빛 흘러 철철 넘치고
이 목이 쉬어 잠기도록 내버려주오 이 몸을…
달달거려 재봉틀에 옷 한 벌 못해 입혀
물 그림자 울컥대는 소용돌이 돌아서
흐려서 물꼬 터지는 곳에 비명소리 들릴까
그리움은 보고픔 기다림은 그리움일까
생명의 별빛 되어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저 강물 출렁이는 통곡 온 동네는 알리라
잡지 마소 잡지 마라 내사마 강물 따라
가고 지고 가고 지고 강물 따라 흘러흘러
내 목이 쉬고 쉬도록 부르리라 노래를…
8. 낙동강, 二更
풀벌레 맑은 음성 들려오는 강물 위에
파편 같은 심장소리 흩날리는 강바람
여울물 흐르고 흘러 가슴앓이 길 되네
원수 같은 가난도 이제 그만 잠잠할까
밥솥에 밥 안치어 뜸의 눈물 흐르는데
장작불 활활 타는 불에 손 쪼이는 아이들
산 자의 몫임을 몇 번이나 되뇌며
멈춤을 모르는 고인 눈물 알거니
밤하늘 동무 삼고자 찾아드는 저 달빛
호국영령 되었으면 설움지도 않을텐데
함박산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 도는
아직도 내 사랑 노래 끝나지는 않았네
태고의 신비들은 막 춘분을 건너가고
보릿고개 한숨소리 젖어드는 달빛아래
어머니 어머니 강은 젖이 되어 흐른다
9. 낙동강, 三更
절룩이며 흐르는 강물에 할퀸 상처
진 같은 설움물빛 황톳물 들면서
수많은 생명 지우며 흘러 잘도 가는가
날갯짓 푸드득 푸드득 밤 소리 없이
갈대 숲 일어서는 하늘가 바람소리
메마른 모래밭에서 홍수 들며 나가고
깊은 강 저 속내를 내 어이 알까마는
강바람은 풀잎들을 애무하며 감싸안고
달빛이 삼킨 울음 물결 고요하다 말하리
회한의 세월 가 모래톱에 쌓인 새싹
아리아리 아리랑 움트는 아린 곡조
무수한 말을 토하며 울컥대는 소린가
잔주름 여울지는 저 강물 일렁임이
돌부리에 걸린 물결 휘영청 달이 밝고
도요새 발자국 따라서 저어가리 새날을
낙동강, 마무리
풋풋함도 애달아 설익은 사랑노래
비틀대던 발걸음도 정신차려 걸을까
초록에 취한 풀잎에 노란 꽃잎 피어라
눈비를 삼키며 폭풍우에 견딜 사랑
별빛이 아름다워 벌 나비 찾아들고
물소리 낮은 음계로 고요하게 흐른다
아리아리 아리랑 노랫가락 끝나지 않아
돋을 샛별 짙은 어둠 흐려지는 이 땅에
오늘도 숨쉬는 강물 태평양에 닿아라
* 제2회 낙동강유채축제 강변에 살자 시낭송에서 낭송된 시입니다. 본 시인의 허락없이는 무단전제및 복사를 금합니다. 이 시는 4월28일 저녁 남지체육공원에서 처음으로 시낭송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