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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춘하추동'에 해당되는 글 1

  1. 2011.11.11 春夏秋冬

春夏秋冬

2011. 11. 11. 17:56 | Posted by 여남

春夏秋冬


1월

 

無題


 

박상선


 

바람소리였을까?

메아리였을까?

저 들녘에서 가슴 안으로

속삭이며 들려오는

육신(肉身)을 부벼 대는 소리는

어쩌면 사랑처럼

어쩌면 진한 고독처럼

파도같이 헤엄치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며

꿈틀대는 대지(大地)는

동면(冬眠)의 껍질을 벗어 던지는데

자신은 천천히

깊은 잠에 빠져간다.

바람소리였을까?

메아리였을까?

저 들녘에서 가슴 안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는


 

2월

이월  

 

 

날씨 좀 풀리면 일어나야지

땅바닥에 널브러진

풀숲의 따뜻함을 모아

토할 날 기다리는


일월과 삼월 사이 그 사람과 나의 사이

그로부터 꽂힌 말들이 언 땅을 솟구치는

언 마음을 솟구치는 들녘에 나섰다가

굵은 바람과 뒹굴다가

한기와 소주 한 잔 하다가

그러다 세월까지 씨부렁거리다가

갯도랑 따라가는 냇버들 뒤에 숨은 아기 같은 봄

대지를 넘쳐흐르는

이글거리는 날을 보려다가

이월은 잦은 고뿔 재치기 하다가


날씨 좀 풀리면 일어나야지

세상으로 흩어지는 쓸쓸한 바람 속

희미한 연정을 싹틔우는 아지랑이 다듬어

그에게로 가는 길


 

 


3월 

공습경보 

 

  

남녘에서 

 

꽃이란 도적들이 몰려온다고

 

귓밥을 후벼 파는

 

 


싸이렌 소리

 

왱 - 왱 - 왱

 

 


동토(凍土)를 돌진하는,

 

 


내려 꼽는

 

소이탄 같은 봄비.




4월


유채꽃밭 1

 


온통 유채꽃 밭이다.

 

 

떨어지다가 

 

동으로 튼

 

강가에 피어 난

 

유채꽃들 

 

 

낙동강엔 

 

애달픈 농심이

 

온 강가에 노랗게

 

널려 있다.

 

 

세월의 무게를 싣고도

 

결코 

 

죽을 수 없다 맘을 먹는

 

유채꽃들이 산다.

 

 

지금 고향 남지

 

낙동강가엔 

 

온통 유채꽃 밭이다.




5월


찔레

 


저 산마루에

꽃 피면

그걸 찔레라 하리라.

온 몸 가시 덮고

손대지 못하게

잘 무장을 하고

곁에 가까이 두지 않으리라.

하얗게 피여

향기로만

너의 곁으로 가리라.

아름답지 못한 것을

말 하지 마

그대로여서 

맑고 좋은 줄 안다.

더러운 운명을

그대로 두고

죽이고 또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무아로 혼을 대신

말하노니


 

6월

유채꽃밭 2

 

 

나비야 남지(南旨) 가자

한(恨) 널린

강변에서 서오는 내일을 보자.


낙동강에 

구구봉(九九峰)을 남지철교를

꽃잎지고 사라진

서리고 서린

기억들이 흐른다.


누가 잊으랴

삶을 말하지만 실(失)하는 게

기억이라면

어찌 소복 입는 나비랴


모두 춤을 추어라

이 갱빈에서 새로 오는 날을

노래 불러라

목청이 터지도록 불러라.


흰나비 노랑나비

빨주노초파남보 

각양각색(各樣各色) 세상 속에서

제 멋대로 설친다.




7월


 

그대 고이 주어라  


 

그대 

그대 못 견딜게 있거든

강물에게 주라

제 갈 길 가지 못하면

물목 넘쳐

무서운 소용돌이

틀면서

제 길 넓히는 강물에게

고이 주어라


그대

그대 못 견딜게 있거든

하늘에게 주라

무어든 제 뜻대로

운명을 결정하여

데리고 가는 하늘에게

고이 주어라




그래도

못 견딜게 있거든

시인에게 주라

그것은 우리가 천년을 넘게

떨어져서 만나지 못할

인연이어서

온갖 것들에게 주어도

다 못 치워 버릴 고독이어서

울음으로 갈고 닦아서

마침내 줄 것 없는 본체만 남겨

사랑을 빛나게 하리라

밤하늘 별빛으로 남겨 두리라.





8월


억새밭 5

   

 

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義兵들의 당당한

창칼 같은

억새들


火旺山엔

시퍼런 義憤이

산보다 

높은 억새밭


背信과 不義를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억새들이 산다


지금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9월 

 

바람개비 

 

  

몸이 비틀댄다.

저녁노을 속으로 들어가서

붉게 울더니

또다시 비틀거렸다.


몸이 바람에 기댄다.

이 무게를 가지고

바람에 몸을 기대기란 쉽지 않다.

무거운 영혼을

바람에 빙빙 돌려대면서

그는 훌훌 터는 것을

난 털 수 없어 운다.


날은 흐리다가 맑아서

바람이 곁을 스치고 가다가

지친 몸을 붙들고

끌어당기더니 돌아보라고

버리고 돌아보라고

속삭인다.


바람이 분다.

몸이 말없이 바람에 기대고

돌아간다. 




10월



몽돌밭

 

 



[1] 

돌이 되어

흐르는 냇물에 발을

잠가 

제 몸이 깎이는 것도

모르고 

눈물로 강물을 채우러 가는 길

깎이면서 반들해져가는

영혼 


[2] 

저 어디선가

손 내밀어 오는

그대의 해맑은 미소

빛은 

온 몸을 조금씩

비추는 것으로

제 몫을 하고


[3] 

바다로 간다.

꿈은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여 

크고 큰 아픔을 회상하진

않을 것이다.


[4] 

사랑이여 

그대 앞에서 파도소리에도

씻기고 갈리어야만

너의 정체됨을

알았다. 


 

 

11월


 

들 국 화


 

 

그가 부를 때 까지

목청이 부서져 공중에

흩어져

거친 노래로 날고


그가 보실 때 까지

작은 몸 모아다 부풀려

발걸음 옆

노란 웃음이 되고


그가 애무 할 때 까지

심장을 쪼개서 뿌리고

옆서서

독한 향기로 번져


차거운 날

온 몸을 얼려서 문드러져

끝내는

다시 환생을 하는




12월


 

섣달, 그 후회에 대하여

 

섣달이다. 욕정이 온 들녘에 있다.

때는 어김없고

함성이 멎고 세상은 익은 체 하는

그 후회에 대하여


   섣달이다. 누구를 위하여 라는

   구호를 버릴 때이다.

   껍데기를 벗은 몸들은 똑같은

   그 후회에 대하여


잊어라. 우리가 잊지 않아도 잊는 자들 뿐

우리 사랑으로  너를 위한 사랑으로

섣달 속에 눈꽃이 되어 길가에 서 있었다.  

   

   우리는 지금쯤

   더 구석진 어둠 속에 얼굴을 갖다두고

   잊어라 아니해도 잊혀지고  있구나


우리는 내년 첫날 쯤

동백꽃이 피는 뚝방으로 간다.

꽃향기 벌판을 헤매고

찬바람 속 까마귀  구름 함께 날아다닌다.

깊이 숨은 오물을 토해내는

섣달, 그 후회에 대하여

 

 

 

2011.11.11. 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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