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조사위 “기자가 노트북PC·휴대전화 포맷”
53페이지 분량의 진상조사위 보고서 공개… 검찰 고위 관계자 누구인지 특정 못해
-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 승인 2020.05.25 12:34
채널A가 25일 오전 자사 기자의 협박 취재 및 검언유착 의혹에 자체 진상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A4 용지 53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사건 경위와 조사 결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및 개선 방안 등은 담았지만 자사 기자가 접촉한 검찰 고위 관계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논란에 휩싸인 채널A 기자가 자신의 노트북PC를 포맷화하고 휴대전화 2대를 초기화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동재 채널A 기자는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전 신라젠 대주주) 측에 접근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우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회유·협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기자가 이 전 대표 측 인사를 회유하기 위해 보여주고 들려줬다는 ‘윤 총장 최측근 현직 검사장’ 녹취록이 주목됐다.
이번 진상조사는 지난달 1일 김차수 조사위원장(채널A 대표이사 전무)을 포함해 7명의 사내 조사위원이 50여일 조사 끝에 내놓은 결과지만 진상조사위가 “이 기자가 지OO(이철 전 대표 측 인사)과 만나는 과정에 대해 검찰 관계자와 대화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그 ‘검찰 관계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검언유착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 검언유착 의혹에 휩싸인 채널A가 22일 오후 메인뉴스를 통해 자사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을 인정하고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사진=뉴스A 화면 갈무리.
보고서 내용을 보면, 채널A 진상조사위는 “이 기자의 신라젠 취재 착수는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관련자들 진술과 사내 관계자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이메일 등에 비춰볼 때 신라젠 취재 착수 과정에서 이 기자가 검찰 관계자와 논의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채널A 사회부 법조팀인 이 기자와 그의 후배인 백아무개 기자는 지난 2월 초부터 3월22일까지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을 취재하기 위해 이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 전 대표 측 지씨를 만났다.
채널A 기자들은 여권 인사와 가까운 이 전 대표가 여권 인사 정보 제공 등 취재 협조 시 자신들이 검찰 수사에 혜택을 줄 수 있을 듯 이야기를 전개했고 이 전 대표를 대리한 지씨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거듭 실명 확인을 요구하며 ‘밀당’을 벌였다. 지씨가 못 미더워하자 이 기자는 “저랑 통화한 사람이 윤석열하고 가까운 검사장”, “검찰에서 발언권이 굉장히 센 사람”, “한 뭐시기라고 있다. (인터넷에) ‘윤석열’ 한 칸 띄고 ‘최측근’ 치면 딱 나오는 사람”이라며 ‘검사장 녹취록’을 보여주는데, 검사장 녹취록은 채널A 취재에 협조하면 이 전 대표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MBC가 지난 3월31일 이를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이 취재 자체가 “자발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채널A 진상조사위 판단이다.
진상조사위는 “이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편지 내용에 대해 이 기자가 검찰 관계자와 논의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편지를 보낸 이후 이 기자가 검찰 관계자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 기자가 검찰 관계자와의 통화를 녹음해 들려줄 수 있다고 지씨에게 제안한 것 역시 검찰 관계자와 사전에 논의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기자가 지씨와 만나는 과정에 대해 검찰 관계자와 대화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 “이는 이 기자의 진술과 백 기자와의 통화 녹음파일 등 일부 증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가 언급한 ‘윤석열하고 가까운 검사장’을 특정하지 못한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이 기자가 직접 녹음한 검찰 관계자와의 녹음파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조사위는 녹음파일 및 녹취록 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도 밝혔다. 지씨는 이 기자를 2월25일, 3월13일·22일 총 3차례 만났는데, 지씨와 채널A 기자들이 만나 나눈 대화내용을 들어보면 지씨가 ‘검사장 녹취록’을 읽는 대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채널A 진상조사위는 강제 조사권 부재를 이유로 결정적 대목을 밝히지 못했다.
▲ 채널A 취재윤리 위반, 검언유착 의혹 사건 일지. 정리=정민경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진상조사위는 이번 조사 한계에 “강제 조사권이 없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특히 이 기자가 조사위 조사 직전 휴대전화 2대를 초기화하고 노트북PC를 포맷해 녹음파일 등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기자의 보고 라인인) 홍성규 사회부장과 배혜림 차장(법조팀장) 휴대전화에도 이 기자와의 카카오톡 대화는 4월1일 이전 내용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가 진상규명을 위한 핵심 단서를 조사 전 인멸했다고 볼 여지가 큰 대목이다. 진상조사위는 “이 기자가 지씨에게 들려준 녹음파일은 이 기자에 의해 삭제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자신의 노트북PC와 2대의 휴대전화 외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조사위 조사 권한과 범위, 방법 한계 등으로 인해 현재로선 조사위는 녹음파일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 이 기자에게 신라젠 취재에 착수하라고 상급자가 지시한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면서도 “신라젠 취재 착수 이후 이철에게 편지 발송, 지씨와의 통화, 만남 과정은 사회부 내에서 배 차장, 홍 부장에게 사전, 사후에 보고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가 지씨에게 ‘회사’, ‘간부’ 등은 언급했지만 채널A 경영진 및 김정훈 보도본부장 지시 또는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자는 신라젠 취재 성과를 내기 위해 지씨에게 ‘회사’나 ‘간부’를 언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도본부 간부들 책임은 있다고 봤다. 진상조사위는 “배 차장은 취재 과정에 대한 1차적 게이트키핑에 실패했고 홍 부장 등 상급자 역시 취재 과정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취재윤리 위반 부분은 시인했다. 진상조사위는 “이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했다”며 “이 기자는 이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수사’, ‘가족 수사’ 등을 언급했고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통화 녹음파일을 들려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기자는 취재원 음성을 녹음해 지씨에게 들려줬고 녹음파일 또는 녹취록을 조작해 취재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취재윤리에디터 도입, 검찰 출입 제도 개선 TF, 취재윤리 규칙 신설 및 직무교육 강화,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놨다. 진상조사위는 “채널A는 조사위의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회사 명예를 손상시킨 행위나 사규 위반 행위에 대해 징계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와 동석한 백 기자, 보고라인에 있었던 홍 부장, 배 차장 등에 대한 징계가 이뤄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