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박상선(朴尙善)
우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이념도 사랑도 분노도 아닌
원시적인 것이었다. 그렇게도 찾아다니던 눈길은 널 부러
져 있을 뿐 발길을 끌지
않는다. 발걸음이 갈 길을 찾다가 비틀거리던지 쓰러지던
지다.
버러지 보다 못한 생을 털어 바람소리 닮다가 손바닥에
움켜쥐는 것은
몇 톨의 분자뿐인 공기
지난날을 뒤집어 보지 마라. 혁명을 꿈꾸던 시절까지 시
들어진 지금.
의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의지가 솟을까 그것도 사라져
버리면 발걸음 놓을 때 없는 이 어둠 만일까? 우겨대어
도 남들이 아니냐는 불혹
그것은 나의 하얀 스크린 속에 들어 있었다. 여기 놓인
건 그들이 가져간 나의 허구와 나를 떠난 이념의 빈껍데
기뿐이다.
서쪽 하늘에 원초적인 시간을 내다 건다. 입 속의 아픈
풍치를 뽑아내고 절망의 폐액을 뿜어내면 그리움은 맘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솟구치고 내가 빼앗긴 시간 속을
걸어 나오는 내일을 다시 짊어진다. 그곳으
로 노을이 불타며 스미어 온다.
2019년01월22일 여남 박상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