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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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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07:22

 

 

노을

 

 

박상선(朴尙善)

 

 

우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이념도 사랑도 분노도 아닌

 

원시적인 것이었다. 그렇게도 찾아다니던 눈길은 널 부러

 

져 있을 뿐 발길을 끌지

 

않는다. 발걸음이 갈 길을 찾다가 비틀거리던지 쓰러지던

 

지다.

 

 

버러지 보다 못한 생을 털어 바람소리 닮다가 손바닥에

 

움켜쥐는 것은

 

몇 톨의 분자뿐인 공기

 

 

지난날을 뒤집어 보지 마라. 혁명을 꿈꾸던 시절까지 시

 

들어진 지금.

 

 

 의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의지가 솟을까 그것도 사라져

 

 버리면 발걸음 놓을 때 없는 이 어둠 만일까? 우겨대어

 

도 남들이 아니냐는 불혹

 

그것은 나의 하얀 스크린 속에 들어 있었다. 여기 놓인

 

건 그들이 가져간 나의 허구와 나를 떠난 이념의 빈껍데

 

기뿐이다.

 

 

서쪽 하늘에 원초적인 시간을 내다 건다. 입 속의 아픈

 

풍치를 뽑아내고 절망의 폐액을 뿜어내면 그리움은 맘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솟구치고 내가 빼앗긴 시간 속을

 

걸어 나오는 내일을 다시 짊어진다. 그곳으

 

로 노을이 불타며 스미어 온다.

 

 

 

 

20190122일 여남 박상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