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바다
박상선(朴尙善)
빈 바다를 가는
빈 배는 그 바다 보다
못났다.
빈 것은 잃을 것 없는
가라앉기 쉬운
빈 배에 빈 바다를 채워도
육지는 없다.
너에게로 나섰다가
빈 배로
거친 밤바다를 돌아오는
나는 바보다.
빈 가슴속으로
부표는 갈 길을 떠올리지 않는다.
호롱불 같은
별빛이 쏟아질 뿐
거센 파도는 쉽사리
등대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어디로든지
너에게로 다시 가려 할 때
나는 비로소
침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2011.11.13. 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