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이 홍수 피해 키웠다…함안·합천보 침수는 시작에 불과"
황톳빛 된 낙동강…"장마철 공사가 위험 낳아"
기사입력 2010-07-19 오후 5:42:17
홍수기에는 가물막이를 완전히 철거하고 공사를 전면 중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전'으로 강행된 4대강 사업이 더 큰 피해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함안보·합천보 일대에서 보 건설을 제외한 준설 공사를 가물막이를 설치한 채 진행해 오다가, 이 일대가 침수되고 나서야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 집중 호우로 물에 잠긴 함안보.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만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4대강범대위 |
지난 16~17일 경남 지역에 내린 200㎜ 안팎의 큰 비 때문에, 경남 합천군 창덕면 합천보 건설 현장은 17일 오전 4시 50분께 강물이 8m 높이의 가물막이를 넘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완전히 물에 잠겼다. 오전 10시께에는 창녕군 길곡면 함안보 건설 현장에 설치된 5m 높이의 가물막이 위로 강물이 넘치면서 이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
이밖에도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낙동강 일부 구간에는 야적된 준설토가 집중 호우로 일부 유실되면서, 강물이 시뻘건 '황톳물'로 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4대강 사업 현장 곳곳에서 준설을 위해 강바닥을 파헤친 데다, 하천 둔치에 쌓아놓은 준설토가 급류에 휩쓸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월 장마를 시작으로 9월까지 폭우와 태풍까지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공기를 무리하게 앞당기려는 '속도전' 공사가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낙동강 가물막이가 홍수 위험 가중시켜"
대한하천학회·환경운동연합·시민환경연구소·4대강사업저지경남운동본부 등은 19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집중 호우에 따른 낙동강 사업 구간의 피해와 이 일대의 수해 지역을 현장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주목적으로 홍수 예방을 들며 사업이 완료되면 해마다 4조 원의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자고 주장하지만, 16~17일 발생한 집중 호우를 통해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낙동강 폭의 3분의 2를 가로막고 있는 함안보의 가물막이와 하천변 둔치에 적치해 놓은 준설토 등이 병목 현상을 일으켜 낙동강 수위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며 "4대강 사업으로 보 등의 구조물이 들어서면 오히려 홍수 위험은 더 가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함안보의 가물막이가 차지하는 공간만큼 홍수 소통 구간이 줄어들면서, 홍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합천보 공사 현장의 가물막이가 물에 잠기고, 쓰레기만이 걸려 있다. ⓒ4대강범대위 |
지난 주말 집중 호우로 낙동강 일대 공사 현장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한국수자원공사는 18일 보도 자료를 내고 "낙동강의 수위 상승에 대비하고 가물막이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위가 가물막이를 월류하기 전에 가물막이에 물을 채우는 층수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수 충격 방지'를 위해 시행된 이 같은 조치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이는 공사 현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지,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가물막이에 물을 채우는 작업은 인근의 홍수 피해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홍수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물막이를 철거하지 않은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준설토 유실로 '황톳빛' 된 낙동강…홍수기 왔지만 강변 둔치에 야적
이밖에도 4대강 사업으로 준설한 퇴적토를 강변 둔치에 야적해 놓은 것이 홍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을 물론, 준설토 유실로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환경단체들은 "함안보 건설 현장 일대와 낙동강 16공구를 현장 조사한 결과, 둔치에 야적된 준설토가 아직까지 반출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는 현장을 확인했다"면서 "이로 인해 준설토 일부가 집중 호우로 유실되면서 탁수 발생은 물론, 수생태계 황폐화와 상수원 취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홍수 시 준설토가 유실되지 않을 경우에도 문제는 크다"면서 "하천 둔치에 야적해 놓은 준설토 때문에 하천 흐름의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서 범람의 위험 역시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준설토 유실로 붉게 변한 낙동강. ⓒ4대강범대위 |
국토해양부는 지난 3월 '4대강 수해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법정 홍수기(6월 21~9월 20일)에 대비해 둔치에 임시로 적치한 준설토를 홍수가 오기 전에 하천 밖으로 옮기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속도전'으로 퍼낸 대량의 준설토에 비해 이를 적치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홍수기를 맞은 지난달 21일을 기준으로 처리하지 못한 준설토는 270만㎥에 이른다. 법정 홍수기에 접어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준설토가 하천 둔치에 그대로 쌓여 있는 것.
더구나 낙동강 일대는 중금속 오니토가 논란이 된 지역으로, 강바닥에 쌓여있던 오니토가 준설로 파헤쳐지면서 낙동강의 수질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이번에 침수된 함안보 지역만 봐도, 지난 3월 기준치의 20배를 넘는 발암 물질 디클로로메탄과 기준치의 80배를 초과하는 6가크롬·시안 등 중금속이 검출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관련 기사 : "함안보 오니토 발암물질 기준치 20배")
이렇듯 중금속이란 '시한 폭탄'을 내재한 오니토가 낙동강의 수질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준설에 집중 호우까지 겹쳐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합천보 공사 현장 인근의 모습. 준설토를 강변에 야적해 놓은 모습이 모인다. ⓒ4대강범대위 |
'헛발질' 4대강 홍수 대책…"홍수 피해 많은 곳은 '본류'가 아니라 '지류'"
아울러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유역 수해에 대한 현장 조사 결과,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본류보다 지방하천과 소하천에서 발생했다"며 "이미 국가하천의 97%가 정비된 상황에서 치수 대책이 필요한 곳은 4대강 사업 대상지인 강 본류가 아니라 여전히 대책이 없는 지류"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은 "정부는 준설로 인한 본류 홍수위 저하로 지류의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교과서에도 없는 논리이며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정부가 만들어낸 궤변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낙동강 일대에는 준설토 야적과 가물막이의 존치로 범람 위험이 더 가중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준설토 야적으로 홍수 위험이 예견되는 낙동강 16공구에 대한 즉각적인 공사 중단을 정부에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