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한잔하면서 보는 시 *
저공비행 박 상 선
높이 날자했다. 차거운 바람속에서도 죠나단 리빙스턴 시걸 닮고 싶었다.
언제나 일어서다 꺾이는 꿈 오-오 마음아 나를 곁을 잊지 않았겠지
낮게 날아도 보이는 사랑하는 모습들 낮게 날면서 보리라 저공비행하리라
눈물아 너는 비껴라 중년의 나이되어 메마른 샘이 될 수 없는 저공비행이라도 하고 보리라. 2018.12.09 여남. |
* 커피 한잔하면서 보는 시 *
저공비행 박 상 선
높이 날자했다. 차거운 바람속에서도 죠나단 리빙스턴 시걸 닮고 싶었다.
언제나 일어서다 꺾이는 꿈 오-오 마음아 나를 곁을 잊지 않았겠지
낮게 날아도 보이는 사랑하는 모습들 낮게 날면서 보리라 저공비행하리라
눈물아 너는 비껴라 중년의 나이되어 메마른 샘이 될 수 없는 저공비행이라도 하고 보리라. 2018.12.09 여남. |
* 커피 한잔하며 보는 시 *
촛 불
여남 박 상 선
*
조화로운 연금술로
여기에 섰다가
*
투명한 가슴
올올이 풀어 헤치고
*
누구의 입술로
어둠에 입맞추는가
*
잠을 깨지 않는
빈 자리 많은 의자
*
냇가로 흐르다
강이 되는 그리움
사랑은
제 몸을 태워서
*
가로막는
먹물 같은 어둠을 뚫고
*
빛으로
소진되어 멀리 퍼지는
*
마음 하나쯤
밝히고 숨을 거두니
*
*
2018.12.09. 여남.
* 차 한잔 하면서 보는 시 *
사랑을 위하여
*
박상선(朴尙善)
*
짓무른 영혼의
뜰에
허전한 사랑 불러놓고
소주 퍼 마시네.
*
언어가
바람처럼 흩어지고
가슴 속의
한기는 목을 차오른다.
*
눈을 감아
그리움의 구석에서
솟아오르는 모습
끌어 당겨 보듬고
*
너는 너는
나를 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야 한다.
*
비로소
사랑을 위하여
남겨진 자리를 치우고
눈물이 타는
강으로 나설 것이다.
*
2018.12.08. 여남
*우포늪의 황혼*
우포늪
-새들에 묻다.
박상선
새들은 절뚝였다.
우포늪 멀리
우당탕거리는 바람 속에는
진득하게 젖은 풍경 따라
널따란
들수록 기어 나올 수 없는
세상의 늪에서
눈 속을 지워지지 않아
다시 찾아오는 고향 뭍 가
부대끼던 영혼 묻어버리고
품 새 안겨 든 그 자리
노을 무렵
돌이켜 온 아픈 날갯짓
밤 보초서고 있는 새
째진 목소리 하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2018.12.05 여남.
몽돌밭
몽돌밭
박상선
[1]
돌이 되어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
제 몸이 깎이는 것도
모르고
눈물로 강물을 채우러 가는 길
깎이면서 반들해져가는
영혼
[2]
저 어디선가
손 내밀어 오는
그대의 해맑은 미소
빛은
온 몸을 조금씩
비추는 것으로
제 몫을 하고
[3]
바다로 간다.
꿈은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여
크고 큰 아픔을 회상하진
않을 것이다.
[4]
사랑이여
그대 앞에서 파도소리에도
씻기고 갈리어야만
너의 정체됨을
알았다.
2019.11.08 맬랑꼬리 올림.
구도자의 자세와 선비 정신
- 황우문학상 수상특집 詩에 나타난 박상선의 詩世界
윤종덕 (시인. 문학평론가)
1.
시(詩)에 있어서 이미지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낳게 하는 힘이 ‘상력(想像力)’이라고 한다. 이 상상력은 직관(直觀), 연합(聯合), 해석적(解釋的)으로 분류되며, 직관은 외면적 형상보다는 내면적 정신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합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지성(知性) 중 최대한의 기계적 능력을 말함이요, 해석적 상상력은 최재서(崔載瑞)가 말했듯이 ‘체험 속에서 정서(情緖)가 작용할 때에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특색’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상력은 우리 시와 동화에서도 나온다. 그 중 이야기를 하자면, 거북이와 토끼가 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그것은 경기(競技)를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토끼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거북이가 이겼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시인은 기록으로 보면 토끼가 이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론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케 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과 능력을 키워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한 교훈도 우리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요즘의 인식이다.
여기서 박상선 시인의 인식은 이기는 경기를 말하고자 한다. 물론 모든 술수를 다하여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에서 이기자는 것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시작(詩作)이 삶의 출발 선상에 서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그는 살아있는 각성(覺性)을 생각(生覺)이라 하고, 죽어 있는 각성을 사각(死覺)이라 말한다.
“비판의 정신이라는 것은 현상에 만족하지 않는 정신이요, 습관적 중복감을 미워하는 정신이요, 날카로운 신선미를 갈망하는 정신이요, 부여된 것에 맹종하지 않는 정신이다.”고 어떤 시론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 또한, 자유로움을 구속하면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더라도 결승점에서는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는 경기에는 항상 우열(優劣)이 매겨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진실(眞實)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박상선의 ‘황우문학상 수상’ 특집에 게재될 시는 10편이다. 그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으나, 그가 처녀시집『지독한 함정』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로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출간할 시집의 제목이 필자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으나, 그가 1996년 “문예한국”과 “문학세계”라는 두 개의 문예지 신인상에 나란히 등단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하현식의 해설에서 “ ‘쓸쓸함’과 ‘뜨거움’의 친화력”이라는 시집 해설을 보여주었기에 제목을 그대로 출간해 준 적이 있다. 그래서, 그의 처녀시집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그에 대한 예비적 지식의 전부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번에는 “황우문학상” 수상 특집에 게재할 시 해설을 부탁하여왔기에 인연의 정(情)에 답하지 않을 수 없어서 흔쾌히 수락하게 된 것이다.
2-1.
박상선의 시인에 대해서 평론가 하현식은 “육중한 외모를 통해서 투박한 정신을 읽어내었다. 두꺼운 철판으로 주조해낸 거대한 철의 상자 속에 용광로처럼 타고 있는 불길을 느꼈다. 그리고 지역문학지의 제작을 위해 출향 문인들의 원고수집이 여의치 않으면 그들의 영구차가 향토의 선산으로 들어오면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호언장담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다 안내하고 난 뒤에 그는 반드시 낙동강변으로 순례자들을 끌고 가서 강물의 유장함을 맛보게 하는 순서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그의 시집 해설에 적혀있다.
시인의 원고를 받기 위해 오랜만에 그를 만나서 그간의 안부를 들어보니, 그는 그동안 직장도 잃고, 어려운 삶 속에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못해 술을 마시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결과 충남 천안에 있는 금주학교(禁酒學校)를 다녀와 지금은 절대자인 신이 마시라고 해도 한 방울의 술일지라도 마시기를 거부한다.
원고 청탁을 받고 난 뒤,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가 추구하는 시적 세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왜 그토록 그를 술의 함정에 빠뜨렸는지 의문도 생겼다. 이때 떠오른 것이, 시인이란 이 시대의 아픔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 시대의 아픔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데에 머물었고, 그 역시 이 시대의 소산(所産)임을 직감적(直感的)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국가에서는 연평균 5%의 성장과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병행되고 있는 시점인 데도 불구하고, 실업률과 체감 경기에 대한 추위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그는 이러한 생활 속에서 삶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삶을 향한 긍정적인 자세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절박함을 그의 시(詩) 「절반쯤만」에서 우선 읽혀진다.
“올해는
올해는 절반쯤만 주옵소서
절반쯤
언 손 호호 부는 이 먼저 나누어주시고
내 맘을 덜어
슬픔도
눈물도
분노도
아픔까지도
올해는 올해는
모두들 나누어 골고루 주시고
꼭 꼭
절반쯤만
절반쯤만 주시옵소서
-「절반쯤만」전문
그는 시에서 모든 것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절반쯤만”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반만 달라는 것이다. 그 반이라는 것이 생각(生覺)으로 보면,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살아 있는 생각과 살아 있는 시선(生視), 살아 있는 입(生言), 살아 있는 마음(生心), 살아 있는 다리(生行)로 온전히 살아가는 힘이 생동감(生動感)으로 차 있다. 이러한 생동감 또한 자기만이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나누어 골고루 주시고”란 시구(詩句)에서 이를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을 그의 삶과 연관지어 시의 깊이를 더하는 애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절규’의 시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이는 시에서 대해서 말하기를 “미적 쾌감은 적절한 조정으로 심리적 거리가 유지되었을 때 생기며, 미적거리는 시인의 창조 과정에서 겪는 내적 충동과 외적 시 형식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장치로 보여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에서 영탄적으로 나타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의 시에 있어서 흠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에서 드러나는 그의 생각은 ‘진실’이라는 것과 맞물려 있다보니, 가장 진실한 언어는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미적 거리를 두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는 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쓴 그의 시「공습경보」를 한 번 살펴보면서, 그의 시세계(詩世界)에 대한 절박함과 눈시울을 적시는 뜨거운 가슴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남녘에서
꽃이란 도적들이 몰려온다고
귓밥을 후벼 파는
사이렌 소리
왱 - 왱 - 왱
동토(凍土)를 돌진하는,
내려꽂는
소이탄 같은 봄비.
- 「공습경보」전문
따옴의 시에서는 앞서 지적했던 시작(詩作)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흔적들이 역력하게 보인다.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이성적 시선으로 지극히 시적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인의 절제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뜨거운 가슴을 이 시에서도 유감없이 느낄 수 있게 하는 절창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시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공습경보”는 단순한 ‘공습주의보’가 아니다. 절박함이란 이렇게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아득함이자 “왱-왱-왱” 거리는 일벌들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곤고(困苦)함과 귀가 멋은 듯이 앞만 보고 일해도 힘든 삶의 극치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일터가 또한 없기에 “꽃이란 도적들이 몰려온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평화시대의 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래도 꽃노래는 한 두 번이지 자주 들으면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환상(幻想)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픔을 그는 술이란 환각(幻覺)의 상태에서 그렇게 보았던 것인가!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도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그의 시적진실(詩的眞實)과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해석되어진다. 그것은 “동토(凍土)를 돌진하는,” 그 쉼표 속에 함축된 의미가 “왱-왱-왱” 하는 청각적(聽覺的)인 노래로 비상하지만, 결국에는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리듯이, 그렇게 “봄비”로 내렸으면 하는 구도자(求道者)의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2-2
진실에 대한 그의 구도자적 자세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영혼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물론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그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시 「가야의 혼」에서 단편적이나마 그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두 번 다시
이렇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내 어두운 모습
보이지
않으리라 하고
먼 저승
땅으로 나를 옮겨두고
하는 말
우리는 남았다
끝까지
세상이 소멸할 때까지
너를 흐르는
불덩이 되어서
태평양을 솟구쳐
고개를 세우고
오늘의
하루하루
그 우렁참을 알게 하리라.
너 속에 있는
성난 열정 불러모아
일깨우리라
가야의 혼
커지는 불꽃들이여! ”
- 「가야의 혼」전문
따옴의 시는 부제가 “송현동 고분에서”이다. 여기서 그는 아마 생명의 이어짐은 ‘조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데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가계를 이은 조상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창녕인의 원류격(源流格)인 비화벌 가야에 대한 숨결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고, 창녕의 얼을 그의 시적인 장치를 통해 펼쳐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어찌, 여기에서도 영탄적인 목소리를 감출 수가 있으랴! “미약한 감동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강렬한 감동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될 수는 없다. 그리므로, 문제는 늘 감동의 진부(眞否), 진위를 찾아내어 그것의 가부를 결정하는 데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영탄적인 호흡의 밑바닥에는 삶의 극한에서 느끼는 생존(生存)의 몸부림 속에서 서서히 감지되어지는 오늘의 숨결로 이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보여진다. “두 번 다시/ 이렇게/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그의 시 앞부분은 반성에서 시작된다.
그 반성의 끝자락에는 창녕 화왕산 우백호 능선을 따라 내려다보이는 목마산성 아래에 무리 지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사적 제80호)에서 나온 유물에서 시작되어 국보 제33호 지정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에 머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누구보다도 덩치에 비해 눈물이 많은 사람, 그러기에 가슴이 늘 따뜻한 사람. 그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생각하면서 백제의 무령왕과 아울러 신라의 진흥왕의 괄목(刮目)할만한 국토 확장의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창녕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그 비석은 기념비적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두 번 다시…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박상선 시인은 이 가야의 땅 창녕에 남겨진 사람으로서 “세상이 소멸할 때까지/…/불덩이 되어서//…그 우렁참을 알게 하리라//…커지는 불꽃들이여!”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반성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올바른 삶으로의 행보(行步)이다. 곧, 새로운 삶의 의지로 연결되어지는 ‘희망의 불꽃’이기를 그는 기원(祈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장치 또한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답해보면 쉽게 풀려진다. 시는 다양한 정의로 내려지기도 하지만, 그 중에 시는 ‘영가(靈歌)’이자 ‘게송(偈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옴의 시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문자 밖의 세계는 독자의 상상력으로 복원(復元)되어야 할 여운(餘韻)을 남겨두고 있다.
이쯤에서 그의 향토사랑에 대한 열정의 폭을 가늠하기 위해 「화왕산」,「우포늪」,「雜草」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박 시인은 그동안 향토에 대한 연구로 『창녕군지』편찬에 대한 일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2004년 창녕군에서 실시한 ‘창녕자치대학’을 수료한 후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의 자격증도 획득한 바 있어 그 외적 준거가 되며, 창녕의 얼과 사랑에 대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모습들을 우선 살펴보기 위해 시(詩) 「화왕산」을 더 읽어보자.
“돌마다의 외침은
호국의 넋에 있고
충신은 조용히 스러져
보란 듯이
곁에 섰으니
가슴은 파란 하늘이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억새같이 끈질긴
생명이라면
고운 꽃잎 뜨거운 마음으로
그대의 발아래
고이 뿌려주리라. ”
- 「화왕산」후반부
따옴의 시에서는 창녕의 얼과 사랑이 구체적인 모습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박 시인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다소 열정적인 그의 목소리는 낮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용광로에 끓고 있는 무쇠는 결코 그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을 그 열기가 식고서야, 제 모습을 드러내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서는 역시 강렬한 힘의 원천(源泉)인 창녕의 얼을 제 마다 가슴에 품고 살아왔음을 환기(喚起)시켜 준다. 그것이 또 다른 시(詩) 「雜草」와 함께 강인한 삶의 애환이 절규로 토(吐)해짐은,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맞닥뜨려져 있기에 더욱더 징소리가 되어 창녕의 하늘에 울려 퍼진다. 그러나 ‘화왕산’은 가야시대에 축조된 산성이 있다. 그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의병(義兵) 기지(基地)로 삼아 큰공을 세웠던 산의 이름이자 산성의 이름이다.
그 산성이 있는 산 ‘화왕산의 억새’로 오늘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자칫 추상적으로 머물기 쉬운 시의 구체성을 덜하게 보이는 부분이지만, 음력 정월 보름이면 전국 각지에서 달맞이와 함께 억새를 태우는 장관(壯觀)을 보기 위해 창녕을 찾기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음에서 필요 없는 넋두리를 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직설적인 어휘(語彙)들은 거슬리기는 해도 그것이 결코 흠이라고 보기에는 오늘날의 시가 너무 언어적 유희(遊戱)가 많음에 대한 진부(陳腐)함을 피하고자 하는 뜻도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구체성을 갖기란 소설보다 한계가 많은 시에서는 그것을 독자의 상상력에게 맡겨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따옴의 시에서는 아직도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은 소월의 시「진달래」를 패러디한 듯한 시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따옴의 시가 창녕의 얼과 사랑이 ‘나라 사랑, 향토사랑’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충성’임을 직접 드러내어 그 구체성을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 구체성을 살피기 위해서는「우포늪」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새들은 절뚝였다.
우포늪 멀리
우당탕거리는 바람 속에는
진득하게 젖은 풍경 따라
널따란
들수록 기어 나올 수 없는
세상의 늪에서
눈 속을 지워지지 않아
다시 찾아오는 고향 뭍 가
부대끼던 영혼 묻어버리고
품 새 안겨 든 그 자리
노을 무렵
돌이켜 온 아픈 날갯짓
밤 보초서고 있는 새
째진 목소리 하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우포」전문
“시인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생명력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주제로 한 시들을 많이 써 왔다. 사실 모든 예술은 생명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박이문 교수는 예술적 상상력과 생태학의 밀접한 연관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지닌, 따옴의 시에서 박 시인은 ‘새’를 제재(題材)로 가져왔다. 아무튼 그는 생태학에 대한 것보다 우선적으로 향토 사랑에 대한 애향심에서 창녕의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창녕의 자연을 남다른 애정으로 바라보면서 그 느낌을 시적 형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새의 상징성은 시인의 삶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새를 통해 “절뚝”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늪의 속성에서 말해주듯 빠져들면 빠져 들어갈수록 “기어 나올 수 없는” 상태임을 그는 감지하고 있다. 새의 아픔과 자기의 아픔을 동일시하면서 뼛속까지라는 말 대신에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는 절규는 이 시대의 어려움을 대변하듯이 자신의 현실이 결코 행복하지 못함을 삶의 부대낌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박 시인은 창녕의 땅, 소벌(牛浦)에서 많은 생각에 잠겼고, 앞으로도 계속 향토 사랑에 대한 염려로 가득하리라 여겨진다. 특히 창녕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우포습지의 생태학적 가치와 보존, 창녕의 3얼<숭문정신(崇文精神), 호국정신(護國精神), 개척정신(開拓精神)>이라는 것이 말해주듯 창녕은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가야의 고분군과 아울러 고려시대의 장일(張鎰), 조계방(曺繼芳), 성송국(成松國), 신사천(辛斯蕆)과 같은 분들이 사셨던 문향(文鄕)이다. 그에 대한 유물과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영산 삼일문화제, 20대 청년으로 한국전쟁에서 순국하여 호국인물 100인에 선정되어 남지초등 교정에 흉상이 세워진 진두태와 같은 호국의 얼이 숨쉬고 있는 곳이다. 또한,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에 간송 조임도(趙任道) 선생의 ‘망모암(望慕庵)’이 있다. 그는 선생께서 부모님에 대한 애끓는 정을 담아낸 기(記)를 읽고, 그 정성에 감화를 받았다는 그의 말에서 누구보다도 ‘낙동강’과 ‘소벌(牛浦)’이 있는 창녕의 자연을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2-3
사람들은 보통 꿈꾸기를 좋아한다. 특히, 어릴 때의 꿈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꿈’이 있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유쾌하게 하며, 행복의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보태어 가는 것이 우리네의 모습이다. 그 또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기에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차츰차츰 세련미(洗練味)를 더해가고 있음이 감지된다. 아무튼, 그의 향토 사랑의 마음도 세월의 물에 깎여 몽돌이 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자.
[1]
돌이 되어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
제 몸이 깎이는 것도
모르고
눈물로 강물을 채우러 가는 길
깎이면서 반들 해져 가는
영혼
[2]
저 어디선가
손 내밀어 오는
그대의 해맑은 미소
빛은
온 몸을 조금씩
비추는 것으로
제 몫을 하고
[3]
바다로 간다.
꿈은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여
크고 큰 아픔을 회상하진
않을 것이다.
[4]
사랑이여
그대 앞에서 파도소리에도
씻기고 갈리어야만
너의 정체됨을
알았다.
-「몽돌밭」전문
따옴의 시에서 비로소 시인의 육성(肉聲)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발견과 그 실현을 위한 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음이 느껴지는 시(詩)이다. 자신의 한계와 그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은 이제, 껍질을 벗고 막 날개를 펴는 병아리처럼 추위에 털이 보송송하지만, 더 이상 “눈물로 강물을 채우러 가는 길”이 아니다. “저 어디선가/ 손 내밀어 오는/ 그대의 해맑은 미소/ 빛은/ 온 몸을 조금씩/ 비추는 것으로/ 제 몫을 하고”라는 데에서 살필 수 있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적(詩的) 거리를 유지할 수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창녕의 옛 이름이 ‘비화벌(非火, 比斯, 非自伐)’ 곧 ‘빗불(빛벌)’이듯이 세월의 흐름에 더욱 빛나는 창녕의 얼은 아직도 창녕 사람들의 가슴마다 반들거리는 빛으로 살아 숨쉬는 한, 삶의 고난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결코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옛말에 “쇠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삶은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존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생태시학의 원류(源流)인 세월의 물은 아직도 낙동강 물로 흘러간다. 그러나, 생명을 이어주는 창녕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강변 유채 꽃으로 피어나는 생동감으로 그는 출렁이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의지했던 술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약했던 자신을 성찰하면서 스스로 우뚝 서고자 세찬 강바람마저도 새로운 희망을 키우는 병아리처럼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나 햇볕 반짝이는 ‘웃음’의 양지(陽地)로 시의 노래는 승화된다. 이는 그의 정말 값진 체험의 소산(所産)이기에 살아있는 목소리가 노래로 변한다. 그 노래의 가락은 또한 진실한 울림으로 잔잔하게 느껴진다.
그의 시세계는 나라에서 관직을 주어도 무엇보다도 세 번이나 징을 울려서 출사(出仕) 하기를 사양했던, 간송 선생의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구도자의 자세로 나라 사랑과 창녕 사랑, 고향을 지키려는 애향심이 눈물겹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낙동강을 눈물로 채우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한다. 잡초와 같은 끈질긴 삶의 지혜로 새로운 길을 닦기 위해 오늘도 노래하고 있다.
[1]
거리에 나서면 온갖 길들이
눈앞에 있다.
비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젖는다
저 거리 오고 가며 쌓여 가는
목소리
웃고 있는 꽉찬 가슴
울먹이는 빈 가슴
길 위에서 나는 偵察兵이다.
[2]
마음을 쏜다.
깊숙이 숨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憂愁
두 눈에 떠오르는 그대
照準鏡 속에 들었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이유를 묻는다.
恩惠를 잊어버리지 않으며
우리의 숱한 밝은 추억될 것
배낭에 지고
나는 먼 길을 나섰다.
- 「길」전문
따옴의 시는 시적 화자가 ‘나’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이 박 시인의 자신을 말하고 있는 지는 그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 시인에게 물어보고 시를 감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여기서는 굳이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한 편의 시가 시인의 느낌과 생각이 담겨져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시의 화자를 통해 시인은 세상을 향해 말을 하고 있는 격이 된다.
이 시의 끝맺음은 “나는 먼 길을 나섰다.”로 마감을 하고 있는 데, 이는 시적 화자(話者)가 어느 한 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유랑(流浪)의 길을 나서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왜 시인이 유랑의 길을 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시 (詩) 속으로 되돌아가서 살펴보자. 그러나 그는 아직도 유랑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 느낌이 든다. 그가 창녕의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정(情)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시의 행간에서 애정 어린 눈빛이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따옴의 시 전반부 마지막 행에서 “정찰병(偵察兵)” 이라는 낱말과 마주치는 순간, 박 시인이 아직도 유랑의 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이 시어(詩語)에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다시 되돌아가서 “사람들은 젖는다.”, “울먹이는 빈 가슴”에서 시적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함께 젖는 가슴과 같이 울먹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정찰병”이다.
그는 ‘나그네’가 아니기에 더더욱 발길을 멈추고 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가서고 싶으나 쉽게 다가설 수 없다. 이는 앞서 살펴본 “몽돌밭”이라는 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더불어 그가 왜 망설이는 가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러한 상황에서 이웃을 의식하고 이해하는 순간, 그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고 살아왔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베풂을 받고 자라야 베풀 수 있다.’는 새로운 깨침을 얻기까지 그토록 많은 아픔과 눈물 속에서 “가슴이 벌렁거리는” 감격을 “추억”이라는 시어에 함축시키면서, 인생살이란 서로 베풀고 베풂을 받으면서 상호 협력하는 사이에 성숙되고, 보람과 의미, 가치를 증대시킨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구체적 시어를 강물에서 낚아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힘든 작업임을 절감하면서 말이다. 시적 화자는 다시 “먼 길을 나섰다”고 하지만, 그는 창녕 땅을 떠나지 못한다. 창녕은 생명의 고향이자, 은혜를 입고 성장해온 삶의 무대이기에 생명이 있는 한, 고향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제, 그의 육체적인 이동이 아니라, 성장을 아픔을 딛고, 보다 자신감 있게 자기의 삶을 사랑하면서, 나라 사랑, 고향 사랑, 자연 사랑을 더욱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삶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생(生)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운전(運轉)하면서 삶아 가는 삶의 힘이 충전(充電)되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상에서 그의 시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 번째 생활의 곤고함에서 오는 절규와 절제된 감성, 뜨거운 가슴을 표현했다면, 두 번째는 충효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녕의 얼과 생명을 부여받은 비화벌의 후예(後裔)로 선비 정신과 자연 사랑에 대한 구도자의 자세이다. 이는 애정(愛情)과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해석되어지며, 세 번째는 세월 속에 다져진 진실의 반짝임과 희망의 노래이자, 애정 어린 관찰자의 입장과 삶을 통해 깨닫게 된 은혜로운 생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설정되었음이 드러난다.
3.
글이 ‘그리다.’라는 말에서 왔듯이, 그의 ‘자유’ 는 방종(放縱)이 아닌 ‘자연스러움’에서 온 말일 것이다. 박 시인이 생각하는 ‘자유’의 이미지가 시적 형상화를 통해 이미지의 직관, 연합, 해석과 아울러 인식의 지평(地坪)은,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론이 주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도 ‘이웃과 벗’을 통해 옥황상제는 아직도 그의 짧은 시(詩)의 행간(行間)에서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박 시인이 말하는 거북이와 토끼가 경기에서 우열이 가려지듯이 ‘이기는 경기’를 하자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에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그의 시작(詩作)이 살아있는 각성(覺性)을 생각(生覺)이라는 점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의 산 정상(頂上)에 생동감 넘치는 환호(歡呼)와 상쾌함을 뜻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우리는 이러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창의력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건강한 사회의 버팀목으로 설 수 있음을 긍지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창녕의 정신 곧, 숭문과 호국, 개척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녕인이 창녕 얼을 행동에 옮기듯이, 제각기 고향을 아끼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검소하고, 근면한 자세로 이 땅에 쟁기의 보습으로 옥토(沃土)를 가꿀 수 있을 때, 박 시인의 시에서 보여준 “절뚝”이는 새가 ‘바르고 건강하게’ 회복되어 즐거이 노래나는 낙원이 따로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이 자리를 빌어 ‘황우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박 시인에게 늦게나마 축하를 드리면서 부족함이 많은 사람에게 해설을 부탁해준 데에 대한 답이 될지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기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어려운 나라 경제와 맞물려 돌아가는 박 시인의 곤고한 삶 또한, 그의 강인함과 열정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代案)을 찾아 창녕의 하늘이 푸르고 넓음을 창녕 땅을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축복의 선물이 되어 창녕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만드는데 지렛대가 되었으면 한다.
------------------------------------------------------------------
윤종덕
. 1955년 경남 함안 대산 출생
. 1973년 마산공업고등학교 교지[靑史徒]편집장
.한국방송대학 농학과(1978년)졸업
.창원기능대학 금속학과(1986년)졸업
.한국방송대학 국문학과(1997년)졸업
.1984년 창원기능대학 성산문화상 시부문 수상
.1988년~1994년 현대정공(주) 사보 편집주간
.1989년~1993년 성산문학회장
.현재 한국문협.경남문협.창원문협.민들레문학회회원
저서
.1992년 [청아청아 연꽃청아]시집상재
.2000년 [바보연습]수필집 상재
.2001년 [한국문화유산용어사전]편저
.2002년 [큰바위얼굴 논리논술기초]편저
.2002년 [풀입눈망울]시집 상재
.2003년 [맑은 마음 깊은 노래 (윤종덕 시평설집)]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출판부에 서 출판부 비평선집 제1로 발간
연락처
주소:(641-825) 경남 창원시 사림동 96-2번지
전화:(055) 266-1545
돼지머리, 삶혀서 웃다.
박 상 선
남은 삶을 존중해다오
아이엠에프 왔다 가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피붙이, 기억하는 靈魂들
나이 오십 줄에 허한 바람만이 곁에서
서성거린다.
남은 삶을 존중해다오
어떤 因緣이래도 因緣의 이름으로
소중한 것이거늘
어떤 삶도 삶의 이름으로
경건한 것이거늘 삶을 分解하는
構造調整만 날아다닌다.
남은 삶을 존중해다오
몸은 망가지고 거리는 비틀거리고
허우적대며 다가온다
寒氣가 차올라 오는 메마른 시간
목구멍에 삼-삼키운다.
어느 곳이든 몸을 뉘이면
삶은 저기 있다.
삶은 가까운 저 곳에 있다
오늘 고사상에 올라앉은 돼지머리,
삶혀서 웃고 있다.
2018.12.04 여남.
시(詩)를 쓸 때 유의할 점
1. 기승전결 (起承轉結)
2. 언어(言語)의 구조(構造)와 음률(音律)
3. 묘사(妙思)의 형식 분류에 의한 선택
4. 은유를 통한 묘사 구조
a, 고전적인 은유법
b, 직유법을 통한 은유의 구현
c, 은유를 통한 직유의 구현
d, 묘사의 스파게티를 통한 구조의 해체
5. 시는 영적사유의 경험과 행동에서 출발한다.
6, 시에 휴머니즘이 결여되면 시적 가치가 없다.
2011년08월05일 여남.
억새밭 5
박상선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義兵들의 당당한
창칼 같은
억새들
火旺山엔
시퍼런 義憤이
산보다
높은 억새밭
背信과 不義를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억새들이 산다
\지금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2018.12.03. 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