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고영민
겨울 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 시집 한 권이 전부/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허락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후략),* 손택수ㆍ시인
어느 시골 중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이 시를 읽어주었더니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석한 선생님께서 정돈을 위해 눈을 부라렸지만 꽉 채운 교복 단추가 뜯어져나가라 폭소를 터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가 이렇게 웃겨도 되나요? 그리움이니 고독이니 순수니 이런 걸 떠나서도 시가 될 수 있나요? 주제니 상징이니 이미지니 이런 해부를 하지 않고도 시를 감상할 수 있나요?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구김’은 일종의 부정이다. 저 높은 곳에 있는 ‘그분’과 딱딱한 시집 속에 틀어박혀 있는 시를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 시인은 참된 시를 생각한다. 시인에 따르면, 몸에 가장 친근한 언어적 형식으로서 시는 무엇보다 결이 부들부들해야 한다.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